여행의 환상 깨기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고

19년 여름 충동적으로 첫 유럽여행을 떠났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지인들이 일하고 있는데 '놀러와'라는 인사치레를 현실로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유럽여행을 차곡차곡 준비해서 가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남들과 다르면 멋진 줄 아는 성격 때문에 큰 이유 없이 그냥 여행을 가는 시늉을 했다. 이중적으로 고상한 여행의 이유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지 이 책을 샀다. 여행이 한참 지난 지금에서야 읽는다.

여행 이후 허무했다. '그래서 여행의 이유가 뭔데?' 하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여행이라고 하면 과하게 무한 긍정하는 이야기들이 싫었다. 일본인들이 막상 파리에 가면 환상과 현실의 괴리로 호흡곤란이나 현기증을 겪기도 한다고 한다. 결이 다르게 나도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름다운 에펠탑을 보고도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 여행의 화려함에 대한 집착이 나를 괴롭게 했다. 화려함이 별로 좋지 않은데 화려해야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환상과 현실의 괴리가 있었다.

김영하는 여행은 원래 삶의 터전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버리는 경험이라고 한다. 일상에서 결핍된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것이라고 한다. 나도 앞으로의 여행에선 낯선 풍경을 차분하게 마주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책을 읽으며 부풀려진 여행에 대한 환상을 조금이나마 걷었다. 맘편히 여행할 수 있겠다. 김영하 이야기하는 여행의 이유들도 화려함보다는 낯선 고통의 경험에 가까웠다.

어떤 인간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과한 뒤 그 고통이 자신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때 경험하는 안도감이 너무나도 달콤하기 때문인데, 그 달콤한을 얻으려면 고통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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